"차마 눈 뜨고 못 봐" 처참했던 시신들...163명 앗아간 크리스마스의 비극[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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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마 눈 뜨고 못 봐" 처… 작성일25-12-25 13:46 조회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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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전 크리스마스 당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연각 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문 하나 없는 계단은 1층의 불길을 꼭대기 층까지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됐고, 굳게 잠긴 옥상문은 사지로 내몰린 이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버렸다. 그렇게 163명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사진=국가기록원
사진=국가기록원
1971년 12월 25일 오전 10시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22층짜리 대연각 호텔에서 불이났다. 불은 1시간 30분만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소방이 출동했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을만큼 모든 창문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내부 온도는 1000~1300도에 달했다. 투숙객들이 모두 창문으로 나와 구조를 요청했다.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은 "침대 매트리스를 몸에 묶어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며 "잘 떨어지면 좋은데 사람은 머리가 먼저 떨어진다. 잘못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다. 얼굴과 몸에 피가 튀겼다. 그래도 닦고 다시 구조 활동에 나서야했다"고 회상했다.
건물 구조가 뜻밖의 탈출구가 되어 목숨을 건진 이들도 있었다. 7층에 중간 옥상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연기를 피해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소방은 곧바로 고가 사다리차를 준비시켰고, 옥상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침착하게 사다리차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7층 중간 옥상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구조됐다.
사진=국가기록원
사진=국가기록원
군 헬기도 출동했다. 소방 헬기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 군 헬기가 구조에 나섰지만 따로 구조 장비랄 게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구조팀은 최선의 방책을 짜냈다. 건물 옥상으로 밧줄을 던져보자는 것이었다. 군 헬기 조종사는 밧줄을 내린 채 최대한 대연각 호텔 옥상으로 하강했다. 꼭대기층까지 화염이 번진 상황에서 상승 기류가 지속됐던 터라 정확하게 밧줄을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옥상에 있던 사람들은 밧줄을 힘껏 잡았고, 군 헬기는 이 사람들을 옆 건물 옥상으로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총 6명이 구조됐다. 하지만 밧줄을 놓쳐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투숙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양궁선수까지 투입된 것이다. 육교 위에서 양궁 선수들이 로프를 매단 화살을 호텔 창문으로 쏘아 올렸는데, 이는 로프를 연결해 투숙객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필사의 시도였다. 하지만 화살이 로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간혹 화살이 유리창을 깨고 실내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이미 연기와 화마에 휩싸인 건물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당시 보유한 32m 고가 사다리차로는 7층까지만 구조가 가능했다. 장비의 한계로 인해 고층부 생존자들은 사실상 방치된 셈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12시간 만인 크리스마스 당일 밤 10시 불길이 완전히 잡혔다. 현장에 진입한 소방대원들을 맞이한 것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고, 신원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유족들 사이에서는 육안으로 판별이 안 되는 시신 한 구를 놓고 내 가족이라며 실랑이가 벌어지는 비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1104호에선 기적의 생존자가 발견됐다. 당시 주한 자유중국 공사 여선영씨가 해당 객실을 숙소로 쓰고 있었는데,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탈출을 포기하고 화장실 욕조 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화마가 전신을 위협하자 여씨는 욕아산출장샵조 안으로 몸을 피한 뒤 물에 적신 이불을 겹겹이 쌓아 방어막을 구축했다. 이 대처로 7시간 넘게 화마 속에서 사투를 벌인 여씨는, 현장에 진입서울출장샵한 소방대원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돼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추가 생존자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고, 최종 생존자 명단에는 110명의 이름만이 올랐다. 사망자는 163명에 달했다. 결국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은 역대 최악의 화재 사고로 기록됐다.
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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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2월 25일 오전 10시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22층짜리 대연각 호텔에서 불이났다. 불은 1시간 30분만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소방이 출동했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을만큼 모든 창문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내부 온도는 1000~1300도에 달했다. 투숙객들이 모두 창문으로 나와 구조를 요청했다.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은 "침대 매트리스를 몸에 묶어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며 "잘 떨어지면 좋은데 사람은 머리가 먼저 떨어진다. 잘못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다. 얼굴과 몸에 피가 튀겼다. 그래도 닦고 다시 구조 활동에 나서야했다"고 회상했다.
건물 구조가 뜻밖의 탈출구가 되어 목숨을 건진 이들도 있었다. 7층에 중간 옥상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연기를 피해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소방은 곧바로 고가 사다리차를 준비시켰고, 옥상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침착하게 사다리차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7층 중간 옥상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구조됐다.
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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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헬기도 출동했다. 소방 헬기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 군 헬기가 구조에 나섰지만 따로 구조 장비랄 게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구조팀은 최선의 방책을 짜냈다. 건물 옥상으로 밧줄을 던져보자는 것이었다. 군 헬기 조종사는 밧줄을 내린 채 최대한 대연각 호텔 옥상으로 하강했다. 꼭대기층까지 화염이 번진 상황에서 상승 기류가 지속됐던 터라 정확하게 밧줄을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옥상에 있던 사람들은 밧줄을 힘껏 잡았고, 군 헬기는 이 사람들을 옆 건물 옥상으로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총 6명이 구조됐다. 하지만 밧줄을 놓쳐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투숙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양궁선수까지 투입된 것이다. 육교 위에서 양궁 선수들이 로프를 매단 화살을 호텔 창문으로 쏘아 올렸는데, 이는 로프를 연결해 투숙객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필사의 시도였다. 하지만 화살이 로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간혹 화살이 유리창을 깨고 실내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이미 연기와 화마에 휩싸인 건물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당시 보유한 32m 고가 사다리차로는 7층까지만 구조가 가능했다. 장비의 한계로 인해 고층부 생존자들은 사실상 방치된 셈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12시간 만인 크리스마스 당일 밤 10시 불길이 완전히 잡혔다. 현장에 진입한 소방대원들을 맞이한 것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고, 신원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유족들 사이에서는 육안으로 판별이 안 되는 시신 한 구를 놓고 내 가족이라며 실랑이가 벌어지는 비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1104호에선 기적의 생존자가 발견됐다. 당시 주한 자유중국 공사 여선영씨가 해당 객실을 숙소로 쓰고 있었는데,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탈출을 포기하고 화장실 욕조 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화마가 전신을 위협하자 여씨는 욕아산출장샵조 안으로 몸을 피한 뒤 물에 적신 이불을 겹겹이 쌓아 방어막을 구축했다. 이 대처로 7시간 넘게 화마 속에서 사투를 벌인 여씨는, 현장에 진입서울출장샵한 소방대원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돼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추가 생존자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고, 최종 생존자 명단에는 110명의 이름만이 올랐다. 사망자는 163명에 달했다. 결국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은 역대 최악의 화재 사고로 기록됐다.
